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평화의 댐 (문단 편집) === 허구 투성이 200억 톤 수공설 === * 한때 '''동양 최대의 댐'''[* 정확히는 동양 최대의 사력댐이다. [[2023년]] 기준으로 [[중국]]의 [[삼협댐]]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댐이다.] 소리까지 들었던 [[소양강댐]]의 최대 저수량이 29억 톤이다. 참고로 이 정도 수량을 모으는 데도 6년 넘는 공사기간과 훨씬 더 긴 저수기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이 정도 호수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길이는 장장 100m 이상, 평균 수심 100m 이상, 수문 근처의 최대 수심은 200m가 넘는다. 그런데 '''이것의 7배'''(200억 톤) 짜리 호수를 소양강 댐보다 훨씬 상류에? '''그것도 북한이?''' 단순하게 계산만 해도 200억 톤의 물을 저장하려면 가로 20km, 세로 10km, 높이 100m 짜리 '''직육면체''' 정도 되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 정도 규모의 댐을 지으려면 [[치악산|치악산 국립공원]] 면적에 평균 수심 100m 짜리는 되어야 간신히 근접할 정도로 초 대규모 댐이다. * 만약 정말 금강산에 200억 톤의 물을 비축할 수 있는 댐을 만들려면 덤프트럭으로 흙을 나르는 데 13년, 물을 채우는 데 14년, 최소한 도합 '''27년'''이 걸리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물론 시간은 많이 흘렀고 저수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저수 용량은 약 26억 톤 수준에 불과하다. * 더구나 북한의 토목기술 수준으로 보아 금강산댐에 필요한 인원은 공사기간 내내 '''연인원 10만 명~15만 명 이상'''이 필요한데 착공 당시에는 군병력을 15만 명을 동원했지만 금강산댐의 공사 지역이 굉장히 좁기 때문에 이만한 인원과 장비를 지속적으로 억지로 밀어넣는다면 당연히 정상적인 공사는 어렵다.[* 실제로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의 어느 다리 공사에서 인력과 장비를 억지로 밀어넣었다가 교각이 붕괴되어 수백여 명의 사상자를 낸 전력이 있었다. [[https://nklogin.com/post/Postmng?ptype=v&contentkey=BFC1605601541|관련 링크]]] * 그리고 하류에 건설된 대한민국의 [[파로호|화천댐]],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 [[팔당댐]]이 있어 방류 이후 서울 지역 침수까지는 최대 8 ~ 9시간이 걸리므로 홍보에서 그렇게 강조하던 기습적인 [[수공]]은 불가능하다. * 또 비축한 물이 120억 톤 이상이 되면 물이 오히려 넘쳐서 '''북으로 역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이것과 앞선 이유들(공사기간, 작업면적)은 [[MBC]]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 그나마 양심 있던 한 안기부 간부가[* 정황상 안기부 소속 간부인지, 그 분야 전문가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200억 톤 물폭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똑부러지게 설파한다.] [[이학봉]] 2차장([[이재용(배우)|이재용]] 분)에게 진언한 내용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학봉 차장은 우리에게 불가능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필요한 문건을 만들어야 할 뿐이라고 못박았다. 이는 드라마상의 내용이지만 이 드라마 자체가 "실화"와 교차검증된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분명히 논픽션을 표방했으며 등장인물들의 상당수가 아직 살아 있었던 정계/재계의 거물들이기 때문에 소송 위험도 있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신중하게 만들어졌을지 생각해 보자. * 세계 최대의 댐인 [[중국]]의 [[싼샤 댐]]의 저수량이 각각 393억 톤, [[미국]] 최대의 댐인 [[후버 댐]]의 저수량이 336억 톤이다. 북한에서 신설하던 댐이 200억 톤을 달성한다는 것은 북한에 [[양쯔강]] 급의 강이 있더라도 불가능했을 일. * 만약 북한이 남침용으로 이런 짓거리를 한다면 남침의 주력이 될 기갑부대의 진격로를 모두 쓸어버려 습지로 만들어 놓고 한강을 도하할 수 있는 다리를 모조리 무너뜨리는 자폭을 저지르는 셈이다.[* [[라스푸티차]]를 생각해보면 된다. [[독소전쟁]] 당시 매년마다 라스푸티차 때문에 [[소련군]]과 [[독일 국방군]]의 진격이 느려지거나 막혔고 그나마 독일군은 어떻게든 진격 자체는 했지만 소련은 그대로 멈춰 버렸다. 이는 21세기에도 다르지 않아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가 우월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우크라이나]]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차]], [[자주포]] 등 각종 중장비와 어마어마한 보급물량이 소요되는 현대전에서 도하는 훨씬 어려워졌기 때문에 대형 교량이 지니는 전략적 가치는 상상 외로 크다. 단기 결전만이 살 길인 북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제 손발을 자르는 셈. 1980년대 후반이면 이미 홍수로 선공해서 피해준다고 북한이 [[적화통일]]을 노릴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 1986년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기간이었고 1988년에는 [[서울특별시]]에서 [[1988 서울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일성]]은 "남조선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는 것을 절대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1986년 3월 평양을 방문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수상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이와 같은 연설을 하였다.] 허나 이런 만행을 저지른다는 것은 '''[[뮌헨 올림픽 참사|1972 뮌헨 올림픽 사건]]'''을 상기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듯이 외교적으로 매우 아둔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물론 북한은 실제로 이런 상황 속에도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와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등의 지속적인 테러 공작을 벌였다.] 그야말로 [[소련]], [[중공]]도 편들어 줄 수 없었을 정도로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다.[* 이미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이후 여러 국가로부터 외교적으로 기피 대상이 되긴 했다. 아웅 산 묘소 테러 이후 북한은 잇다른 테러 공작과 삽질로 인해 [[탈냉전]] 이후에는 완벽히 외교적으로 고립됐다.] * 이 모든 사실을 떠나서 일단 위에 언급한 TV 방송의 모형과 달리 서울은 수조 안에 들어 있지 않으며 심지어 분지 지형도 아니다. 200억 톤의 물이 서울에 가득 찬다고 해서 [[63빌딩]] 절반이 물에 잠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광범위한 면적에 수해가 발생할 뿐이다.[* 다만 당시 안기부장 [[김덕]]은 평화의 댐에 대한 비판이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한 [[문민정부]] 시절인 1993년 7월 국회에 출석해서 금강산댐은 "북한이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 "댐 높이는 155m에서 215m까지 축조 가능하다.", "5공 당시 안기부가 왜곡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높이 200m 댐이 무너지면 수도권은 해발 44.8m에서 50.7m까지 침수될 것이라고 미 육군 공병수로국이 판단하였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21세기 같았으면 검색 한 방에 논파됐을 [[떡밥]]들 투성이지만 당시의 [[언론통제]] 수준과 그 용이성을 잘 알 수 있는 사례에도 해당된다. 물론 당시는 이런 논파를 시도했다간 [[빨갱이]] 소리는 기본에 [[고문]]의 위험까지도 존재했을 시대였다. 따라서 200억 톤 수공설이 허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그냥 입 꾹 다물고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온라인 매체는 없었고 PC통신의 태동기였으며 그나마도 소수의 컴덕들만 접근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전화선을 사용하는 PC통신은 1997년 야간정액제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시내/시회전화로 접속해 조금만 오래 써도 '''전화비 폭탄을 맞았다.'''(014XY는 시내/시외전화와 달리 요금 산정구간이 넓다. 시내전화가 1도수당 180/258초라면 014XY는 277초/396초로 산정된다. 물론 적당히 써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단 1988년 12월 이전에는 도수 전화요금제여서 전화비 폭탄이 없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71200329201003&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7-12&officeId=00032&pageNo=1&printNo=13165&publishType=00020|#]]) 더불어 [[한겨레]] 신문 정도 되는 논조의 오프라인 매체도 없었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을 엿먹이려고 금강산댐을 지은 것과 남한이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평화의 댐을 건설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